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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공포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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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 / 김진경 기자 media_jinkyoug@hanmail.net
치열한 경쟁에 직장인 건강은 '빨간불'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도심의 고층건물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 ⓒ미디어다음 김준진
스트레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화이트 컬러도 하루종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블루컬러도, 전문직의 대명사로 알려진 의사, 한의사, 변호사들도 스트레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인간관계'와 '생존경쟁'에 얽혀 살고 있는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는 건강을 위협하는 '맹독'이 되고 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큰 병을 키우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심장혈관계에서는 빈맥, 부정맥, 고혈압, 협심증, 콜레스테롤 증가가 생긴다. 위장계에서는 신경성 구토, 위경련, 가슴앓이, 딸국질, 설사,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위산분비과다, 변비 등이 생기며, 호흡기계에서는 신경성 기침, 기관지 천식, 과호흡 증후군이 나타나고, 비뇨 생식계에서는 빈뇨, 발기부전, 불감증, 조루증, 월경불순, 불임증이 생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분비계에서는 당뇨병, 비만증, 갑상선질환이 생기고 신경계에서는 편두통, 긴장성 두통, 수전증, 티크 경련(얼굴 근육이 실룩실룩 하는 증세) 등이 일어난다. 면역계에서는 면역성이 감소하고, 병균감염이 증가하며, 정신심리 면에서는 우울증, 공포증, 기억장애, 불면증, 공황장애가 생기고, 근육계에서는 근육통, 요통, 관절염, 골다공증이 생긴다.
종합병원의 진료과목을 나열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질병들이 모두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병들이다.
가천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권복규 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며 "물질적인 풍요는 이루었으나 IMF 이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가 비슷한 2개의 부서를 합치는 조직개편 과정에서 영업 외근을 뛰던 자신이 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부쩍 '알아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정신과를 찾았는데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권고 받았습니다." 회사원 이준호(가명. 36) 씨의 얘기다.
회사원 박준필(가명, 33) 씨도 어느날 갑자기 근무도중 갑자기 숨이 막히는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는데 진단결과는 정상판정. 그 뒤에도 몇 차례 비슷한 증세로 고생한 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았지만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뒤늦게 정신과 상담을 통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공황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굴뚝질환 '뚝' 스트레스성 '쑥'
과거 진폐증, 난청 등 굴뚝형 질환은 급감하고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뇌심혈관계, 근골격계 질환이 직장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지난 10월 노동부가 발표한 <2003년 3/4분기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작업으로 인해 '직업관련성 질환' 판정을 받은 근로자가 6,171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2,145명으로 53.3% 증가했다.
작업관련성 질환이란 단순반복 작업이나 부적절한 작업 자세로 목·어깨·팔·손목 등의 신경이나 근육에 통증이 생기는 '근골격계질환'과 업무 스트레스나 작업환경의 급변으로 발병하는 협심증 심근경색증 고혈압성뇌증 등 '뇌심혈관계질환'이 대표적이다. 최근 우울증, 대인공포증, 사회불안증 등의 불안증세가 발전해 나타나는 공황장애 및 적응장애 또한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자는 1,81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40명에 비해 17.5% 늘어났으며, 요통으로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근로자 654명 등 전체 근골격계질환자는 지난해 1,423명에서 2,804명으로 103%나 증가했다. 또 과로와 간질환 등 작업 관련성 기타 질병에 걸린 근로자는 25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3명보다 109.9% 급증했다.
한국직무스트레스연구회가 지난해 245개 사업체 6,977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무 스트레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건강군은 5%로 나타났으며, 잠재적 스트레스군은 73%였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고위험군이 22%로 조사됐다. 고위험군은 방치할 경우 심혈관 질환이나 탈진, 극단적인 경우 '과로사'로 진행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산업안전공단 발표에 의하면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사람들의 수는 매년 10%씩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760명에 이르렀다. 특히 이중에는 35∼39세 직장인도 70명이나 포함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에 처해 있는 운수 노동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장시간 택시운전을 마치고 난 택시운전자 중 99.47%가 뒷골이 당기고 아프며 녹초가 돼 다리가 후들거리는 등 몸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한국산업안전공단 근골격계질환 예방팀 박정선 실장은 "사회나 직장 내의 스트레스 요인을 정신적 억압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취미생활 등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성적 스트레스는 기존의 병을 더욱 악화시키며 잘 낫지 않습니다. 스트레스성 질환은 평균적으로 다른 질병에 비해 치료기간과 비용이 두 배 이상 높습니다. 완치된다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재발하는 확률도 높으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울 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박사는 스트레스성 질환에 대해 많은 직장인들이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큰 병으로 키우기 전에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요령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운이 나쁜가 보군' '다음에 더 열심히 해 보자'
전문가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은 치료하기 더 어렵다고 말한다. 그때 그때 해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 광명신경정신과 제공
우 박사는 스트레스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 생활사건 1단계 지각단계, 2단계 심리적 방어단계, 3단계 정신생리적 반응단계, 4단계 반응감소단계를 거쳐 질병의 단계로 악화된다. 따라서 2~4단계에서 잘 적응하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1단계는 스트레스를 인식하는 단계로 이때 느끼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과거 경험, 소득ㆍ교육 수준 등에 따라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평소 스트레스에 잘 단련된 사람은 이 단계에서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
2단계에서 심리적 방어를 잘 사용하면 정신생리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내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자신에 대한 비하 대신 '운이 나쁜가 보군' '다음에 더 열심히 해 보자'는 등의 합리적 생각을 갖는다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다음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3단계로 진전되면 두통, 어깨 근육의 긴장,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 혈압 증가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정신 생리적 반응을 겪게 된다.
하지만 4단계에서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등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려는 노력을 할 경우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여기에는 운동이나 명상 등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다 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모두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으며 적절한 스트레스는 생활의 활력이 됩니다."
우종민 박사는 "직장인은 짧은 기간 내에 지나친 업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업무의 선택, 집중, 위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공격성을 해소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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